오승훈 논설위원

이재명 정부의 공직사회를 겨냥한 ‘군기 잡기’가 적지 않은 긴장을 형성하고 있다. 총리를 필두로 내각 인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전 정부가 임명한 고위직들과 동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

이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중국 고전 ‘서유기’에 나오는 파초선(芭蕉扇)을 언급했다. “농담 같은 얘기지만 서유기에 보면 손오공이 파초선을 빌리러 가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서 “파초선이라는 부채를 한 번 부치면 천둥·번개가 치고, 두 번 부치면 태풍이 불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했다. “아주 작은 부채인데 세상은 엄청난 격변을 겪지만 본인은 잘 모른다”면서 “권력이 그런 것 같다. 여러분한테는 의미 없는 작은 사인 하나일지 모르지만 그 판단에 누군가는 죽고 살고, 망하고 흥한다”고 했다. 공직자가 가진 권한 행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달라”고 했는데, 전체 공직사회에 전달하려는 메시지였다.

파초선은 파초잎으로 만들어진 부채다. 과문한 탓인지 기억에 없어 찾아보니 무시무시한 신공(神功) 무기다. 여의봉처럼 크기 조절이 가능하고, ‘거대한 화염산의 불길도 마흔아홉 번을 부치면 잡아버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무기도 당해낼 수 없는 게 있었다. 정풍단(定風丹)이다. 이것만 지니고 있으면 제아무리 강한 바람에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다. 손오공이 파초선을 훔치는 데 주효했던 무기가 정풍단이었다.

이 대통령이 공직자의 권한을 파초선에 비유했다면, 국정기획위원회는 공직자가 정풍단의 신공을 부린다고 여기는 듯하다. 각 부처를 대상으로 업무보고를 받는데, 내용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재보고’ 불호령이 속출했다. “변화에 저항하는 것은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다”고 질타했다. “세상이 바뀐지 모른다”는 말까지 나왔다. 정권교체의 태풍이 불었는데, 왜 꿈쩍 않고 버티냐는 것이다. 새 정부 정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자는 취지일 수 있고, 그럴 필요도 있다. 다만, 대통령이 공직자의 임면에 직간접 영향을 미치는 자리가 2만 개에 이른다. 공직자들에게는 대통령과 여당이 파초선과 정풍단의 신공을 가진 권력자다. ‘새 권력에 줄을 서라’는 메시지라면,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적지 않을 듯하다.

출처: 문화일보(2025-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