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지만, 당시 야당인 신한민주당의 이민우 총재는 이른바 ‘이민우 구상’으로 내각제 개헌을 추진했다. 이에 반발한 김영삼, 김대중 등은 70여 명의 의원과 함께 신민당을 탈당해 통일민주당 창당을 추진했다.

같은 해 4월부터 통일민주당은 전국적으로 지구당 창당 작업에 나섰다. 당시 장세동 국가안전기획부장은 신민당의 이택희, 이택돈 의원에게 5억 원을 주고 이를 저지할 것을 사주했고, 이들은 ‘용팔이’로 알려진 조직폭력배 김용남과 부하들을 동원,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지구당 창당 방해에 나섰다. 폭력배들은 지구당에 난입해 각목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난동을 부렸는데, 이것이 한국 정치사에 흑역사로 남은 ‘용팔이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구속된 김용남 씨는 이후 목사가 돼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2003년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 2012년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 등 정당사에 이런저런 내부 충돌과 몸싸움 등 논란은 있었다. 한동안 사라진 듯했던 정당 내 충돌 사태가 대선 패배 이후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 내에서 벌어지면서 당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당 지지율이 16%(7일 NBS 발표)까지 떨어진 가운데 지난 8일 대구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친윤 인사인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가 연설회 도중 참석자들을 선동하는 등 난동을 부려 파문이 커지고 있다.

당에 입당한 지 아직 3개월이 되지 않아 책임당원 자격이 없는 전 씨는 이날 합동연설회에 ‘전한길 뉴스’ 편집인 자격으로 기자 비표를 얻어 참석했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가 ‘계몽령’ ‘윤어게인’ ‘부정선거’를 주장한 자신을 비난하자 “배신자” 구호를 외치며 참석자들을 선동했다. 전 씨의 소란 때문에 연설을 제대로 하지 못한 조경태 당 대표 후보는 “각목만 안 들었지 지난 시절 통일민주당 전당대회에 침입한 정치깡패 용팔이 사건을 연상시킨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당은 전 씨를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하고 추후 연설회 입장을 금지했다. 전 씨는 자신을 언론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취재기자가 이런 식으로 정치 중립을 어기고 선동을 한 사례는 유일무이하다. ‘가짜 언론인’이 판을 치고 있다.

출처: 문화일보(2025-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