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더는 숨지 않아 당당히 빛날 거야／이 순간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간절히 꿈꿨고 마침내 여기까지 왔어／이제 나를 믿어／우린 더 높이 높이 높이 올라가／지금이 바로 우리의 순간이야／함께라서 더 빛나는 걸 알잖아／우린 찬란히 빛날 거야.’

11일 미국 빌보드 ‘핫100’ 1위에 오른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주제곡 ‘골든(Golden)’의 몇 소절이다. 극 중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부르는 노래는 세 멤버(루미·미라·조이)가 각자의 의심, 상처와 두려움을 떨치고 자신을 믿고 함께 성장을 이뤄내는 내용이다. 3분 14초의 노래 안에 헌트릭스의 성장 서사와 케데헌의 주제가 모두 압축적으로 들어가 있다.

1990년대 중반 아시아에서 시작돼 2010년대 말 미국 본토에 진입한 K-팝 팬덤은 ‘케데헌’의 세계적 인기와 함께 높이 날아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의 한 인기 소셜 플랫폼이 미국 Z세대와 알파세대를 상대로 음악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K-팝(25%)은 컨트리·크리스천뮤직(각 17%), 힙합(10%)을 제치고 팝(31%)에 이어 2위에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외형적 성과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골든’의 가사가 말하듯 청춘의 성장, 연대하는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K-팝의 상징이 된 것이다.

최근 나온 빌보드의 연구보고서 ‘미국의 K-팝 팬덤(K-Pop fandom in the U.S.)’은 이 같은 현상을 잘 보여준다. ‘당신은 K-팝으로부터 무엇을 얻는가’라는 질문에 미국 팬의 49%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영감을 준다’고 답했다고 한다. 41%는 아이돌을 ‘훌륭한 롤 모델’로 여겼고, 절반 이상이 ‘K-팝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답했다. 단순한 음악 감상이 아니라 ‘더 나은 인생을 위한 실질적 동력’이 되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분투해나가는 긍정적인 가사, 자기 확신·연대·위로의 메시지, 여기에 K-팝 그룹의 말 그대로 ‘피땀 눈물’ 이미지가 합해져 낳은 결과다. 이 서사의 힘은 앞으로도 강력하게 K-팝 인기를 견인할 것이다. 이제 K-팝은 우리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단계로 진입했다. 좁은 K를 넘어 ‘케데헌’처럼 누구나 K-팝을 부르고 만들어 파는 보편적 장르로 나아가고 있다. 큰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맞은 K-팝이 더 높이 도약하길 바란다.

출처: 문화일보(2025-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