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만t급의 리버티 수송함을 2710척이나 만든 조선 최강국이었다. 독일의 잠수함 공격에 물량 작전으로 맞섰다. 블록 공법과 포드 방식의 공정관리를 동원해 하루 두 척꼴로 붕어빵처럼 찍어냈다. 그 무지막지했던 생산력이 지금은 사라졌다. 항공모함과 이지스함을 만드는 헌팅턴 잉걸스, 한화그룹이 인수한 필리조선소, 핵 잠수함 전문의 제너럴 다이내믹스, 미 해군 전투함을 만드는 오스탈USA 정도만 남아 있다.

미국은 전시 비상동원이 최우선이었다. 이를 위해 미 연안 무역법(일명 존스법)으로 선박의 국내 건조·소유·국적 선원 비율을 의무화했다. 국방수권법은 군함을 만드는 근로자를 미 시민권자로 제한했다. 번스-톨레프슨 법은 해외 조선소의 미 군함 분해·수리를 금지했다. 이런 3중 그물망 속에서 조선업은 온실 속 화초가 됐다. 현재 미 선박 건조 비용은 아시아 대비 5배나 비싸다. 한화오션이 주당 1척을 건조할 동안 필리조선소는 연간 1.5척을 만든다.

고비용-저효율로 조선업이 쇠퇴하자 해운업도 함께 몰락했다. 미국은 1956년 시랜드가 최초로 컨테이너선을 도입했을 만큼 해운 최강국이었다. 지금은 스위스의 MSC-덴마크 머스크-프랑스 CMA CGM-중국 COSCO-독일의 하팍로이드 등에 밀려났다. 미국의 하와이·알래스카 등 배로 수송하는 지역은 물가가 살인적이다. 따로 10%의 ‘공급망비(費)’를 청구하는 식당도 있다. 선장은 반드시 미국인, 선원들도 75% 이상 시민권자로 의무화해 물류비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회담으로 ‘마스가(MASGA)’ 열풍이 거세다. 미 의회에는 93척인 미 상선을 2034년까지 250척으로 늘리는 조선업 강화법이 발의돼 있다. 우방국에서 만든 배는 한시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허용하되 중국 등 위험 국가에서 만든 선박에는 중과세하기로 했다. 통상 철강으로 만든 배의 설계 수명은 25년이다. 미국은 노후 선박이 55%에 이르고 미 해군은 중국에 맞서 향후 30년간 364척의 군함을 새로 발주할 계획이다. 마스가의 블루오션이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미 조선업계와 노조는 전통적으로 매우 폐쇄적이다. 외국 기업의 참여는 기를 쓰고 반대한다. 그 저항을 어떻게 뚫느냐에 미 조선업 르네상스와 마스가의 운명이 달려 있다.

출처: 문화일보(2025-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