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게티이미지뱅크

달 속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를 찧는 토끼. 오래도록 우리 마음속에 그려진 달 풍경의 전형이다. 옛사람들은 토끼를 불로장생의 정령으로 여기며 장수의 상징으로 삼았다. 십이지에서는 호랑이 다음인 ‘묘(卯)’에 해당하며, 시간으로는 새벽 5∼7시를 가리킨다. 그래서 ‘묘반(卯飯·아침밥)’ ‘묘수(卯睡·새벽잠)’ ‘묘음(卯飮·아침술)’ 같은 말이 생겨났다. 방향으로는 정동(正東)을 뜻한다.

토끼는 우화와 설화 속에서 꾀 많고 영리한 지략의 동물로 자주 등장했다. 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 판소리 ‘수궁가’, 조선 후기 소설 ‘별주부전’이 대표적이다.

오물거리는 작은 입, 안테나처럼 움직이는 긴 귀, 큼직한 앞니 두 개는 토끼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뒷다리는 앞다리보다 두세 배 길어 평지에서는 시속 80㎞로 내달린다. 반면 장거리에는 약하다. 옆으로 달린 눈 덕분에 거의 360도를 볼 수 있지만, 바로 앞의 사물은 잘 보지 못한다. 눈동자는 보통 검거나 푸르며, 붉은 눈은 색소가 없는 알비노 집토끼에서만 나타난다. 평균 수명은 약 10년. 수면은 짧고 자주 깨는 탓에 ‘토끼잠’이라는 표현이 생겼다. 번식력은 동물 중에서도 으뜸이다. 임신 기간은 약 한 달, 연간 40마리 가까운 새끼를 낳는다. 이 때문에 서양에서는 토끼가 다산과 성적 상징, 심지어 ‘플레이보이’의 의미로까지 이어졌다.

토끼는 흔히 겁 많고 순한 동물로 인식된다. 낯가림이 심하고, 겁먹은 듯한 눈과 놀란 듯 쫑긋 세운 귀는 영락없는 겁쟁이의 모습이다. 하지만 토끼는 예상과 달리 사나운 면모도 지니고 있다.

경계심이 강해 화를 잘 낸다. 위협을 느끼면 뒷다리로 땅을 세차게 ‘쿵쿵’ 치며, 화가 나면 상대를 공격한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습성이 매우 강하다. 영역 다툼 때는 폭군처럼 돌변해 앞발로 가격하거나 물어뜯기도 한다. 겉모습은 연약해 보여도, 본능 속에는 생존을 위한 치열함이 숨어 있다.

도서관닷컴 대표

출처: 문화일보(2025-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