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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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감 유행주의보가 발령되면서 ‘트윈데믹’(코로나19와 독감의 동시 유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18년 봄, 인류는 50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전염병을 겪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전사자보다 훨씬 많은 수치였다. 바로 지구적 재앙으로 불리는 ‘스페인독감’(Spanish Flu·사진)이다. 스페인독감은 특히 어린이와 노인보다 20~40대의 건강한 성인에게 치명적이었다. 그런데 이름과 달리, 스페인독감은 스페인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이 질병의 발원지는 스페인이 아니었다. ‘스페인독감’이라는 이름은 전쟁과 언론 검열, 그리고 편견과 오해의 산물이었다.

1918년 당시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 있었다. 전쟁 중인 대부분의 나라는 국민 사기를 유지하기 위해 언론 검열을 강화했다. 병사들의 사망, 전염병의 확산 같은 불리한 소식은 보도 금지 대상이었다. 그러나 스페인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중립국이었다. 그 덕분에 스페인 언론은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었고, 마드리드에서 독감이 퍼졌다는 소식이 전 세계 신문에 실렸다. 그 결과, 유일하게 감염 사실을 공개한 스페인만이 ‘발원지’로 오해받게 된 것이다.

사실 프랑스, 독일, 영국, 심지어 미국에서도 이미 유사한 독감이 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감염 사실을 숨겼다. 외부 세계는 오직 스페인의 보도만을 접했고, 자연스럽게 ‘스페인에서 시작된 병’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스페인은 전쟁 당사자가 아니었음에도, 오랫동안 억울한 오명을 뒤집어썼다. 마드리드의 국왕 알폰소 13세가 감염됐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스페인독감’이라는 명칭은 더욱 공고해졌다. 결국 다른 나라들이 정보를 숨긴 탓에, 정직하게 사실을 알린 스페인만이 병의 이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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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일보(2025-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