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로 시작되는 구절. 조선 시대 소설의 대표작이자 한국 고전문학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홍길동전’의 첫 문장이다. ‘홍길동전’의 저자가 허균이라는 믿음은 오랜 세월 정설처럼 자리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허균(許筠·1569∼1618·사진)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개혁적 사상과 파격적인 언행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신분제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불평등한 현실을 바꾸려 했던 지식인이었다. 이런 점에서 ‘홍길동전’의 주제, 즉 ‘신분의 벽을 넘어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인물’이라는 설정은 허균의 사상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다. 바로 이러한 사상적 일치가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으로 보는 가장 큰 근거가 됐다.

조선 후기부터 “이 소설은 허균이 지었다”는 전승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이후 여러 문집과 필사본에서 ‘교산(蛟山) 허균 지음’이라고 표기된 경우도 있었다. 이런 기록이 반복되면서 ‘허균 작자설’은 점차 상식처럼 굳어졌다.

그런데 이런 통념은 학문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라기보다 가설에 가까운 주장이다. 그 어떤 사료에서도 허균이 직접 ‘홍길동전’을 썼다는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허균의 문집인 ‘성소부부고’에도 ‘홍길동전’과 관련된 언급은 없고, 그가 생전에 이 작품을 집필했다는 기록 또한 남아 있지 않다.

‘홍길동전’의 여러 필사본을 살펴보면 작자 표기가 일정하지 않다. 일부 판본에는 ‘교산선생 지음’이라 적혀 있지만, 대부분의 판본은 작자를 명시하지 않는다. 또한 현존 필사본 중 상당수는 허균이 사망한 이후인 18∼1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문체적으로 보아도 ‘홍길동전’은 허균의 기존 글과는 상당히 다르다.

다만 허균이 작품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결국 ‘홍길동전’은 특정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여러 민간 설화와 구전 이야기가 문학적으로 정리되며 만들어진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도서관닷컴 대표

출처: 문화일보(2025-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