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논설위원

미국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압박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지난 8월 팸 본디 미 법무장관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큰 마약 밀매범”이라고 규정했다. 곧이어 카리브해에 배치된 미 군함이 마약 운반 추정 선박을 20차례 이상 공격했다. 지난 10일 미국은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실은 대형 유조선을 나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마두로 대통령을 겨냥해 “그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마두로 대통령도 “나를 축출하고 석유를 훔치려는 수작”이라며 결사 항전 태세다.

트럼프는 독재자 마두로와 악연이 깊다. 마두로가 부정선거 의혹 속에 2018년 재선에 성공했으나 여소야대 의회가 후안 과이도 국회 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하는 과도정부 수립을 선포하자 미국은 이를 지지했다. 군부의 마두로 지지로 야권의 ‘반란’은 무산됐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작전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베네수엘라 갈등의 배경에는 세계 최대 매장량을 가진 베네수엘라 석유 자원에 대한 미·중 경쟁이 작용하고 있다. 2013년 집권한 마두로는 중국·러시아 등과 밀착해온 전임 우고 차베스 노선을 계승했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수출 길이 막히자 석유 수출량의 80% 이상을 받아준 게 중국이다. 석유·금융·통신 등 중국의 베네수엘라 투자액은 2007년 이후 60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은 차베스 이전 오랫동안 베네수엘라와 우호 관계를 유지해왔다. 1970년대 미국의 원유 수입량의 33%를 베네수엘라가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반미 좌파 정권이 2007년 외국계 석유회사의 자산을 강제 수용하면서 미국의 이권도 상실됐다.

국립외교원은 2026년도 전망에서 미국의 중남미 재개입과 중국의 비군사적 확장으로 미·중 경쟁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고강도 지정학적 충돌도 예상된다고 밝혔다. 미주 지역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선언한 트럼프 버전 먼로주의의 첫 시험대가 베네수엘라인 셈이다. 살인적인 인플레 등 경제난에 군사력이 약한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적수가 안 된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면 내전 상태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와 마두로의 운명을 건 대결의 종착점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출처: 문화일보(2025-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