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고리토 브라질 출신 방송인·사업가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끼리 모이면 꼭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의 행정은 정말 빠르다는 것이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서류 한 장 떼는 데 3분도 안 걸리고, 인터넷으로 신청한 민원도 몇 시간 뒤면 처리돼 있다. 고국에서라면 세 번은 헛걸음했을 일이다. 덕분에 모든 행정 처리를 깔끔하게 해결했다며 연신 한국이 얼마나 사업하기 좋은 곳인지를 설명하게 된다.
지난해 여름, 서울에서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지인도 같은 말을 했다. “한국은 정말 대단해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나보다 먼저 알려주거든요.” 사업이 잘돼 더 큰 사무실로 이사한 참이었다. 온라인으로 법인 변경 등기를 마치자 회사 차량의 등록 주소를 바꾸라는 통지가 왔고, 홈택스와 구청에서도 알림을 보내왔다. 무엇을 언제까지, 어떤 서류를 갖춰 어디서 처리해야 하는지가 안내 문자에 모두 적혀 있었다. 고국에서라면 몇 주가 걸렸을 일들이다. 그런데 몇 달 전 다시 만난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렇게 완벽해 보이던 한국 행정에도 아주 큰 구멍이 하나 있었어요.” 그가 말한 그 구멍의 이름은, 다름 아닌 ‘외국인’이었다.
그는 사업 관련 일로 출입국사무소를 찾았다가 창구에서 뜬금없이 회사 주소 변경 신고 기한이 지났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외국인을 고용한 사업장은 소재지가 바뀌면 15일 안에 출입국사무소에 신고해야 한다. 그는 그런 규정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여러 기관에서 알림을 받았지만, 정작 이 신고에 관한 안내는 받지 못했다. 결국 과태료를 냈다.
다행히 창구 직원은 그가 일부러 법을 어긴 것이 아님을 알아줬다. 더 무거운 처분 대신 과태료로 마무리된 것은 그 덕분이었다. 억울하지 않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규정을 몰랐던 것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했다. 다만 한 가지는 끝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자동차에도 안내를 보내주는 나라가 왜 외국인 고용에 관한 신고는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법을 몰랐다는 것이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가 자신에게 적용되는 법의 조문 번호를 다 외우고 사는가. 한국인에게도 법령의 언어는 충분히 어렵다. 하물며 그 조문이 한국어로만, 그것도 외국인은 프로그램부터 설치해야 열 수 있는 800쪽짜리 한글파일(HWP) 문서 속 어딘가에 놓여 있다면 어떨까. 나 역시 필요한 규정을 찾느라 반나절을 보내곤 한다.
올해 6월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87만 명을 넘었다. 연내에 300만 명 돌파가 예상된다. 몰려드는 외국인을 감당하는 인력은 그 숫자만큼 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방문했던 출입국사무소도 언제나 대기 인원으로 붐볐다.
다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소통의 방식이고, 그 뒤에 숨은 우선순위다. 한국은 여러 해 동안 세계 최고의 전자정부 국가로 꼽혀 왔다. 그런데 왜 외국인과 관련된 일에서는 같은 행정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정보에서 소외된 외국인들은 검증되지 않은 비싼 대행업체에 의지하거나, 알았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처벌을 받게 된다.
잘 만든 안내문 한 장, 제때 도착하는 알림 한 통은 창구의 민원과 불필요한 과태료, 공무원의 설명 시간을 함께 줄인다. 친절의 문제이기 이전에 효율의 문제다. 또 그 혜택은 외국인 주민에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외국인을 고용해 가치를 만들고 새로운 시장의 문을 여는 한국 기업, 한국 제품을 소비하며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알리는 사람들 모두가 그 수혜자다.
한국어를 공부하던 시절, 나는 ‘애민(愛民)’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백성을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세종실록의 한 대목을 읽고 나서였다. 사리에 밝은 사람조차 법조문을 따져 본 뒤에야 죄의 무게를 아는데 하물며 백성이 무엇이 죄인지 어찌 알겠느냐며 중요한 조항만이라도 추려 백성이 읽을 수 있는 글로 옮겨 널리 알리자고 한 것이다. 600년 전에도 문제는 규칙이 아니라 정보에 닿는 길이었다.
내가 아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이 나라에서 잘 지내고 싶어 한다. 쓰레기 분리 배출 방법을 몇 번씩 묻고, 명절에 이웃에게 무엇을 드리면 좋을지 고민하고, 존댓말을 틀릴까 봐 긴장한다. 규칙을 지키려는 마음과 그 규칙을 알 수 있는 길 사이에는 아직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좁히는 일은 어렵지 않다. 세종대왕이 말한 애민, 그 ‘민’이라는 글자 안에 이 땅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외국인도 함께 담겼으면 좋겠다.
출처: 동아일보(2026-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