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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우경임]유럽 청년 시위

  • 관리자
  • 26.10.23
  • 16

우경임 논설위원

 

17일 프랑스 중부 도시인 리모주에서 1883년 개관한 시청이 시위대의 방화로 화염에 휩싸였다. 신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꼭대기 43m 종탑이 불이 활활 붙은 채 고꾸라지는 모습은 마치 몰락하는 프랑스를 보는 듯했다. 이날 파리에선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마리안 동상도 부서졌다. 파리 외곽 도시 고교생들이 “돈 없는 학교, 미래 없는 나라”라고 외치며 시작된 시위는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공공부문 노조, 치솟는 생활비에 분노한 시민들이 합세하며 걷잡을 수 없는 소요 사태로 번지고 있다.

 

▷프랑스 시위는 경제난과 주택난에 시달리는 유럽 곳곳으로 확산 중이다. 미래를 잃어버린 ‘Z세대 청년’들이 먼저 거리로 뛰쳐나왔다. 벨기에는 대학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에 생활비 부담에 항의하는 노조가 가세했다. 이탈리아에선 고유가, 고물가에 항의하는 시위가 시가전을 방불케 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시위는 고질적인 주택난이 발단이 됐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이탈리아(139%), 프랑스(118%), 벨기에(111%), 스페인(100%) 순이다. 고령화에 대비한 구조 개혁을 미루다가 경제 성장이 멈추자 나랏빚이 폭증한 것이다. 노동, 연금 개혁에 잇달아 실패한 프랑스는 재정 여력이 바닥나 교육·주택·의료 등 공공서비스 투자를 줄였다. 프랑스 교육 예산의 3분의 1이 교육 공무원 연금 지출이다. 학교는 비가 새고 교사는 부족하다.

 

▷정치권은 쪼그라든 파이를 두고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기는커녕 이에 편승해 정치적 이익을 탐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극우 ‘국민연합(RN)’이 무분별한 이민 확대를 폭력 시위의 원인으로 돌리는 가운데 극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는 경제적 불평등을 강조하며 강경 진압을 비판한다. 급기야 내년 대선 결선 투표 때 프랑스 정치 사상 최초로 극우파와 극좌파 후보가 맞붙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음 달 조기 총선을 치르기로 한 스페인에선 극우 연정 가능성이 거론되고, 이탈리아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신생 극우 정당이 급부상했다.

 

▷55만 명이 참여한 1차 시위에서 프랑스 경찰이 통제력을 잃어 소매점 약 3000곳이 폭동으로 피해를 입었다. 이번 주말 2차 시위를 앞두고 프랑스 정부는 파리에 야간 통행 금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시위가 끝난다 해도 딱히 답이 보이지 않는다. 재정 적자를 소폭 줄이려는 예산안조차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월급의 절반을 세금으로 냈던 시민들의 박탈감을 달랠 방법도 없다. 이민자, 부랑자 등이 방화와 약탈에 가담하면서 반이민 정서는 고조되고 있다. 과거 우리가 닮고 싶었던 ‘복지 천국’ 유럽의 오늘이다.

 

출처: 동아일보(202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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