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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이은주]‘포스트잇 이별’은 적정한가

  • 관리자
  • 26.10.24
  • 13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메시지는 내용만큼 전달하는 방식도 중요 정치인 SNS 소통, 친밀감과 호감 높이지만

어떤 정책과 현안 말했는지 기억 흐리게 해 SNS서 중대현안 설명의 적정성 따져봐야

 

200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주인공 캐리는 어느 날 아침 남자친구가 남긴 포스트잇으로 이별을 통보받는다. “미안해, 난 못 하겠어. 날 미워하지 마.” 캐리는 자신이 차였다는 사실보다 통보받은 방식에 더욱 분노한다. 문자메시지로 해고당했다는 사연이 공분을 사고, 거꾸로 카톡 메시지 한 줄로 퇴사를 알린 신입사원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는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경우 우리가 느끼는 당혹감이나 황당함은 어떤 종류의 메시지를 어떤 방식으로 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암묵적 합의나 규범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카페트(카카오·페이스북·트위터) 정치’, 뒤이어 ‘카페인(카카오·페이스북·인스타그램) 정치’라는 말이 유행했다. 정치인들이 소셜미디어를 선호하는 이유는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여러분과 늘 가까이 있겠습니다” “항상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라는 약속을 실천하는 데 소셜미디어보다 나은 채널은 찾기 어려워 보인다.

 

필자는 2012년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 리서치’에 발표한 연구에서 참가자들에게 유명 정치인의 동일한 메시지를 신문 인터뷰와 정치인이 직접 작성한 트위터 게시글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제시한 뒤 반응을 비교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평소 이야기를 읽으면서 잘 몰입하는 참가자들은 정치인의 트윗을 읽을 때 그와 직접 대화를 나눈 것 같은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고, 이는 해당 정치인에 대한 호의적 평가와 높은 투표 의향으로 이어졌다. 2013년 ‘저널 오브 커뮤니케이션’에 출판된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대선 후보가 TV 토크쇼에서 사회자와 나눈 대화를 보여주거나, 토씨까지 같은 내용을 후보의 트위터 게시글로 읽게 했다. 평소 그 정치인을 좋지 않게 보던 사람들의 경우 트윗 형태로 후보의 발언을 접했을 때 그 발언을 반박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같은 트위터 게시글이라도 대화의 모양새를 갖추면 효과는 더 커졌다. 다른 연구에서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정치인이 팔로어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는 형식의 트윗과, 마치 독백처럼 자신의 생각을 올리는 형식의 트윗을 비교했더니 대화형 트윗을 읽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떠올렸다. 그러나 정책 관련 생각은 오히려 줄었고, 정작 정치인이 언급한 현안이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했다. 호감을 얻는 대가로 정책 메시지 전달은 뒤로 밀린 셈이다.

 

흥미롭게도 정치인의 소셜미디어 실언은 역설적인 효과를 낸다. 2020년 연구에서 정치인들의 막말 트윗을 모은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정치인들의 일상적인 트위터 활동을 소개한 기사를 읽은 사람들에 비해 “정치인은 트위터에서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고 믿는 경향이 높아졌다. 나아가 이 믿음은 생면부지의 다른 정치인이 올린 무난한 게시글까지 더 진실하다고 평가하게 만들었다. 걸러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소통이라는 인상, 그래서 더 진실하다는 착각이 해당 메시지가 유통되는 플랫폼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로 이어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소셜미디어 소통은 대중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왜곡 없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치인에게 매우 매력적일 수 있다. 그러나 효과성(effectiveness)과 적정성(appropriateness)은 구별되어야 한다.

 

필자가 2018년 발표한 실험에서는 가상의 정치인이 가족과 취미 등 사생활을 공개한 게시글과 공적 활동을 알린 게시글을 비교했다. 반응은 정치인의 성별, 그리고 읽는 사람이 소셜미디어를 무엇에 적합한 공간으로 여기느냐에 따라 갈렸다. 소셜미디어를 친교의 공간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정치인의 사적 이야기는 호감을 높였다. 반면 소셜미디어가 사적 교류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사적 메시지를 올린 정치인의 유능함을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특히 여성 정치인에 대해선 투표 의향까지 낮아졌다. 사람들은 메시지의 내용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얘기를 여기서 이렇게 전달하는 게 적절한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최근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소통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구중궁궐이 아니라 언제든 국민의 목소리가 닿는 거리에 있다는 느낌, 국민에게 정부가 하는 일을 숨김없이 공유한다는 인상을 주려는 것이라면 소셜미디어는 효과적인 채널이다. 하지만 국가의 중대 현안을 국민에게 알리고, 첨예한 사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는 창구로 소셜미디어가 가장 적정한지는 국민이 별도로 판단할 문제다. 어떤 말은 포스트잇이 아닌, 차분히 마주 앉아 전달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출처: 동아일보(202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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