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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가면] 바다와 도서관, 그리고 작은 질문

  • 관리자
  • 26.10.24
  • 15

오성은 소설가·세명대 교수

 부산바다도서관 가을 북토크 현장에서 관객과 대화하고 있는 오성은(왼쪽) 소설가와 김태훈 팝 칼럼니스트. /부산바다도서관

부산바다도서관 가을 북토크 현장에서 관객과 대화하고 있는 오성은(왼쪽) 소설가와 김태훈 팝 칼럼니스트. /부산바다도서관

 

바다와 도서관이라니. 전혀 다른 두 개의 공간을 나란히 두자 새로운 장소가 되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얕은 파도가 겹쳐지는 부산바다도서관은 다대포 해변공원에서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야외 도서관이었다.

 

부산바다도서관 측에서 가을 북토크에 나를 초대한 까닭은 내가 쓴 소설 ‘블랙 인페르노’를 원작으로 한 영화 ‘실낙원’이 이달 중 개봉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부산의 섬 동네 영도 출신으로 바다를 다룬 에세이와 소설을 출간하며 자칭 반 타칭 반 바다소년으로 살아온 이력도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마침 게스트를 초청할 수 있다고 해서 어렵사리 김태훈 팝 칼럼니스트를 모시게 되었다. 북토크를 찾아준 관객을 위한 이벤트였지만 내심으로는 내 소설에 대한 감상을 직접 전해 듣고 싶은 이유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대포 해변공원의 야외 무대에 나란히 앉아 관객을 마주하게 되었다. 김태훈 씨는 특유의 이지적인 어투와 위트 있는 진행으로 순식간에 관객을 사로잡았다. 사려 깊게 작품을 해체하고 그 사이에서 파편같이 흩어져 있는 디테일을 발견하는 그의 시선은 따뜻했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음악적 해석으로 작품을 재조립했을 때는 나도 관객이 되어 그를 바라보게 했다. 일몰이 다가오며 다대포 해변의 파도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동안에도 관객의 시선은 한곳에 모여 있었다.

 부산 다대포 해변공원을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부산 바다 도서관'. 2026년 하반기 행사는 이달 초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부산바다도서관

부산 다대포 해변공원을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부산 바다 도서관'. 2026년 하반기 행사는 이달 초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부산바다도서관

 

독자와의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중에 한 소녀가 손을 들었다.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될 법해 보이는 아직은 어린, 아이였다. 스텝이 건네는 마이크를 처음 쥐어보는 듯 어색한 손동작과 긴장한 호흡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해가 저만치 물러난 참이었고, 사위가 아득해졌다. 다대포 해변공원에 이례적인 정적이 흘렀다. ‘소설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요?’ 수줍은 듯 당돌한 목소리.

 

순간 객석에서는 아, 하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나는 바로 그 질문을 받기 위해 여기에 초대된 것이었다. 몇 번이고 돌려볼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나오기 직전에 갑자기 목이 마르거나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아마도 그건 본질을 피하고자 하는 비겁함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순간처럼 아이에게 농담인 양 답변을 건넸다. ‘소설가 되지 마세요.’ 그건 아이의 엄마에게 건넨 말이기도 했다. 내 어머니가 떠올라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허구한 날 다대포 해안 도로를 달리며 고되게 습작하던 시절이 떠올라서였을까. 결국에는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말의 절반은 진심이었다.

 

소설가는 이런 근사한 행사에 초대를 받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고독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독서 인구의 급감은 작가들의 생계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려던 때에 김태훈 씨가 아이를 위해 답변을 덧붙여 주었다. ‘소설가들은 매일 소설을 쓰는 사람입니다. 매일 쓰면 소설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건 나를 위한 위로같이 들렸다.

 

바다도서관을 뒤로하고 다대포를 빠져나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나란히 창밖의 노을을 보았다. 어두운 차 안은 진한 트롬본 소리로 가득 차고 있었다. 차는 도망치듯 노을의 반대편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이게 커티스 풀러죠? 참 잘 분다.’ 그의 말에 스피커 볼륨을 높이고 속도를 낮추었다. 근사하고도 부끄러운 하루가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 바다와 도서관이라니.

 /부산바다도서관

부산 바다 도서관


출처: 조선일보(202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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